지난 수십년간 한국의 눈부신 성장과 발전이 누구의 공로인가 묻는다면 단연 공학인의 공헌이라고 말하고 싶다. 돌이켜보면 정치적 안정도 없었고, 남북대결은 주기적으로 위기를 맞았으며, 국제 금융이나 무역환경은 한국에 호의적이지 않았고, 주변 강대국들은 한국을 계속 견제하여 왔었다. 그럼에도 지금 세계 10위 이내의 강국으로 진입한 것은 공학인들이 개발하여 생산한 수많은 공산품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대표 상품은 서비스ㆍ금융이 아닌 반도체ㆍ자동차ㆍ선박ㆍ휴대폰과 같은 철저한 공산품이다. 한류가 뜨고 한식이 알려지고 한국방문 관광객이 넘쳐 나지만 공산품의 비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면 훌륭한 공산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훌륭한 아이디어와 상품기획, 탁월한 생산기술과 판매전략이 어우러져야만 성공작이 나온다. 이 네 가지 핵심요소 중에서 일부는 사올 수도 있고 아웃소싱을 할 수도 있으나 전체 흐름을 장악하고 있는 기업만이 성공작을 만들어낸다.그리고 성공기업에는 모두 능력 있는 공학인, 즉 엔지니어가 다수 포진하여 있다. 따라서 훌륭한 공학인을 양성하여 기업에 공급하기 위한 국가 시스템이 정책적으로 추진되었고 그 결과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하여 매우 풍부한 공학교육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공학인의 자질과 능력에 대한 기업의 불만이 최근 매우 고조되고 있다.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한 신입 엔지니어의 경우 실무능력이 떨어져서 다시 몇 개월 이상 직무교육을 받아야 하며 또 대학에서 기초교육도 부실하여 첨단제품 개발이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학평가, 교수평가에서 논문 편수와 인용횟수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실무교육이 공학교육에서 점차 사라졌고 이론과 원천연구가 공학연구의 주류를 이루게 되면서 산학협동도 사라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공학교육은 세계 일류대학과 견줄 만큼 랭킹이 올라갔지만 졸업생은 너무 많이 배출되고, 취업이 되더라도 자질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를 개선할 묘안이 없을까. 급한 대로 기업과 정부가 합작한 수요자 중심 공학교육이 최근 크게 떠오르고 있다. 기업이 특정대학을 선정하여 필요한 자질을 갖춘 인력을 집중육성 하고자 하면 정부가 대학에 여러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반도체ㆍSWㆍ원자력ㆍ나노ㆍ융합 분야를 시작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경우 커리큘럼 편성, 연구주제 선정, 졸업심사 및 평가는 물론 교육에도 기업이 적극 참여하여 졸업 후 바로 실무에 투입 가능한 전문 공학인을 양성한다는 것이 목표이고 추진 배경이다. 아직 성과를 논하기엔 이르지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위와 같은 방식을 추진하는 기업은 실제로 대부분의 경우 대기업이며 첨단제품 개발을 위한 인력양성이 목적이므로 대상이 되는 대학도 최상위권 대학이 된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하면 해당 기업은 당장 만족하겠지만 대학정원이 묶여 있으므로 다른 전문분야 인력의 배출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점에서 다른 기업, 특히 중소기업은 인력확보에 비상이 걸릴 우려가 있다.또한 일부 과목에 편중한 교육이 된다면 새로운 학문분야에 소홀해져서 우수대학에서조차도 미래에 대한 준비가 부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의료 소프트웨어 학과를 만드느라 기존의 컴퓨터공학과를 축소하면 이런 부작용이 생길 것이다. 따라서 큰 틀에서 보면 연구능력이 우수한 고급 공학인 배출을 위한 교육은 기업보다는 대학과 교수가 책임져야 한다.
그렇지만 고급엔지니어가 아닌 경우에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 설득력이 높다. 학생은 취업이 보장되고 대학은 기업과 정부가 주는 여러 혜택으로 양질의 교육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목적으로 운영되는 고등교육기관이 일부 존재하나 더 확대될 필요가 있고 이 경우 해당 대학평가와 교수평가는 연구보다는 교육과 취업에 높은 점수를 줄 필요가 있다.
교육정책은 획일적으로 시행될 때에 학생이나 대학에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다. 수요자 중심의 공학교육 정책은 고급엔지니어 배출을 위한 공학연구 역량강화 정책을 수반하여 균형을 이루어야만 대학과 기업, 학생과 교수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다.
글쓴이: 최양희 교수(미래인터넷포럼 의장) yhchoi@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