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드인이 최근 발표한, 사무실에서 5년내에 사라질 도구 열가지를 보면 PCㆍ팩스ㆍUSB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사라지는 이유는 대체품인 탭 컴퓨터ㆍ스마트폰이 이들의 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이미 타이프라이터ㆍ필름카메라ㆍ제도기ㆍ슬라이드 프로젝터는 사무실의 필수기기 자리를 컴퓨터에 내주고 사라졌다. 더 많은 기기들이 앞으로 사라질 것은 뻔하다.
한편 마크 와이저는 1991년에 "사라지는 기술이야말로 진정 심오한 기술이다"라고 설파했었다. 여기에서 사라지는 기술은 위에서처럼 도태된 것이 아니라 너무 널리 퍼지고 다른 것에 내장되어서 더 이상 이 기술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21세기의 컴퓨터는 이제 사라지는 기술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게임기ㆍ스마트폰ㆍTV는 물론 이제는 자동차ㆍ집ㆍ주방기기까지도 내장된 컴퓨터 없이는 동작하지 못하지만 아무도 이들을 컴퓨터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와 같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기술이 빠르게 변해갈수록 새로운 사회, 새로운 문화가 급속히 도래할 것이라고 미래학자들은 예견했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인터넷과 웹, 스마트폰과 앱스토어, 빅데이타와 클라우드는 생각보다 빨리 현실이 되었고 이를 잘 활용하는 것이 개인ㆍ기업ㆍ정부에 모두 중요한 일이 되어 갔다. 디지털 기기 사용법을 익히고 이에 맞추어 생활하는 것이 필요했으나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난 많은 이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들을 `디지털 이민자'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디지털 시대의 언어는 그대로 이해가 안 되어서 반드시 예전의 업무 스타일, 과거의 자료 스타일로 변환해야 친숙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태어날 때부터 주위환경이 모두 디지털인 세대는 변환이 필요없이 모든 것을 바로바로 이해하고 소비하고 창조한다.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불리는 이들은 웹이 활성화된 1990년 이후에 태어났으므로 이제 막 성년의 나이에 접어들고 있다. 이들은 생활 자체가 `디지털 스타일'이다.
디지털 스타일의 특징은 무엇일까. `사라지는 것에 대한 익숙함'이 첫 번째일 것이다. 무엇인가에 길들여지고 애착을 가지고 끊지 못하며 다른 것으로 바꾸기를 주저하는 것이 아날로그 또는 디지털 이민자들에게 몸에 밴 습성이라면, 디지털 네이티브는 엄청난 가벼움으로 바꾼다. 기기도 바꾸고, 앱도 바꾸고, 콘텐츠도 바꾸고, 뒤쳐지고 지나가는 것들은 가볍게 사라지게 한다. 디지털 스타일을 이해한다면 상품이나 서비스는 수시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특히 사용환경에 민감하므로 인터페이스 설계에 공을 들이는 것이 좋겠다.
디지털 스타일은 속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도서관에 가고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이민자들의 행동양식이라면 네이티브들은 동시에 여러 방법으로 빠르게 답을 찾는다. 특히 여러 가지를 동시에 펼치고 익숙하게 병렬처리가 가능해야 한다. TV를 보면서 문자를 교환하고 동시에 웹 서핑을 하고 숙제 리포트를 쓸 수 있다면 당신은 네이티브이고 디지털 스타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네이티브는 기존의 질서, 고정관념, 가치관을 보다 자유롭게 해석한다. 엄청난 정보를 순식간에 열람하고 파헤치며 사소한 것의 가치도 놓치지 않고 이해하므로 대형언론, 미디어, 기업의 보도나 홍보보다는 신뢰하는 소셜 커뮤니티나 멘토의 의견을 존중한다. 그러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생존법을 가진 자가 진정한 디지털 네이티브일 것이다.
디지털 스타일은 21세기 깊숙이 진입할수록 개인과 사회를 지배할 것이다. 디지털 네이티브가 10년 뒤면 인구의 반이 될 것이므로 이를 주류로 받아들이고 이를 꽃 피우는 여러 가지 준비가 절실하다.
디지털 스타일은 사라지는 것에만 익숙한 것이 아니라, 미숙한 것들을 사라지게 하는 데에도 익숙하니까.
최양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