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중앙일보 2019년 12월 18일자 [문병로의 알고리즘 여행]
창의성에 대한 관심이 큰 시대다. 성실한 인재보다 창의적 인재를 더 원한다. 이런 창의성에 대한 관심의 크기에 비해 정작 창의성의 본질에 관한 이해는 일천하다. 잘못된 창의적 느낌을 주는 것들이 있다. 튀는 옷과 헤어스타일, 불규칙적인 생활, 개인주의, 거침없는 자기주장, 대학 중퇴나 정규교육 부재… 창의성을 이런 외형적인 특성들과 연관시키는 기사나 포스팅을 본다. 이런 것들은 일부 창의적인 사람들이 드러낸 겉모습의 일부일 뿐, 역방향으로 이런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더 창의적인 것은 아니다.
창의적 산출물은 하위의 지적 빌딩 블록들을 결합하고 거기에 어떤 새로움이 가미될 때 만들어진다. 산출물의 레벨은 자신이 가진 하위 빌딩 블록들 중 가장 레벨이 높은 것보다 한 단계 더 높아질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좋은 품질의 빌딩 블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초등학교 수준의 빌딩 블록을 가진 사람이 발휘하는 창의력이란 초등학교 레벨의 산출물에 국한된다. 창조성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가진 기초에 연동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조지 바살라는 그의 책 『기술의 진화』에서 새로운 기술이 출현하는 3가지 조건을 들었다. 하부기술들의 다양성, 이들로부터의 선택, 새로움의 가미. 이것은 진화의 핵심 프로세스이기도 하다.
자기주장도 변변히 하지 못하고, 한번 시작한 일을 싫증 내지 않고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은 구식 스타일의 인재쯤으로 여긴다. 이런 성향을 가진 직원이나 학생들 중에 충분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갑자기 화려하게 창의성의 꽃을 피우는 경우가 많다. 고급의 산출물을 내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기초 확립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어떤 대나무는 땅속에서 5년을 준비한 다음 지상으로 머리를 내밀면 하루에 최대 60cm까지 자란다. 이런 면에서 중·고등 교육의 어려움이 있다. 학생이 충분한 기초를 쌓도록 하는 것과 ‘편하게’ ‘행복하게’ 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것은 양립하기 힘든 면이 있다. 우리 고등학교 수학이 한 예다. 후자의 가치에 집중하여 지속적으로 커리큘럼을 축소해왔다. 결과적으로 AI 시대를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수학적 도구인 벡터와 행렬이 통째로 빠져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에서는 유도리 교육이란 이름으로 이런 철학의 교육을 시도하다가 포기한 바 있다.
강제적인 프로세스가 없이도 상당한 레벨에 이를 수 있는 학생은 희소하다. 극소수의 특출한 학생들만이 스스로 지적 호기심을 따라 충분한 수준의 기초를 구축할 수 있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이런 류의 천재들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미국이라는 시장에 있었기 때문에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우리는 그런 환경이 아니다. 구성원들이 가능하면 풍부한 지적 빌딩 블록들을 갖도록 하는 확률적 접근법이 현실적이다.
흔히 토론의 과정에서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는데 토론도 그냥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기초가 있어야 말이 통하고 빌딩 블록을 주고받고 다른 이의 빌딩 블록 위에 자신의 것을 구축할 수 있다. 사고의 추상화 레벨이 두 단계 이상 차이 나면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 호기심도 필수지만 이것도 기초가 있어야 적절한 궁금함을 도출할 수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권태를 참아내면서 고통스러운 기초 확립의 시간을 견디는 성실함과 집요함을 필요로 한다. 많은 창의적인 인재가 이런 지루하고 창의적이지 않은 듯한 과정을 견딘 결과로 만들어진다.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부 문병로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