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로의 세상읽기] 변방의 과학자들

출처: 매일경제 2020년 12월 17일자 [세상읽기]

노벨상은 대개 주류에서 나온다. 그런 중에 변방에서 튀어나와 승리를 쥐는 사람들이 있다.

캐번디시연구소의 왓슨과 크릭은 DNA 구조 관련 전공자가 아니었다. 킹스칼리지의 윌킨스 그룹이 관찰의 핵심 기술인 X선 분석 데이터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고, 현대 이론 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칼텍의 라이너스 폴링은 DNA 사슬이 나선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았다. 폴링은 X선 분석 사진을 얻으려 윌킨스에게 편지를 썼지만 윌킨스는 거절했다. 반면 신출내기 왓슨에게는 학회에서 만나 흔쾌히 사진을 보여줬다. 이것이 물리학 전공자였던 왓슨을 분자생물학 주제에 입문하게 만들었다. 윌킨스와 폴링이 경쟁하는 와중에 폴링이 결정적인 학술 모임 참석을 방해받는다. 미국 정부가 폴링의 비판적인 성향을 못마땅히 여겨 여권을 취소해버렸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느낌을 다들 갖고 있던 시점이었다. 혼란의 와중에 구경꾼 같은 존재였던 왓슨과 크릭이 이중 나선 구조임을 밝혀 노벨상을 받는다. 당시 그들은 윌킨스 그룹에 설명회를 열어 삼중 나선을 주장했다가 망신을 당하고, 연구소장으로부터 DNA 연구 금지 조치를 당한 지 3개월이 채 안된 시기였다. 실험 한 번 안 해보고 주류에 속해 있지도 않으면서 기회를 잡은 유명한 일화다.

이렌 졸리오퀴리는 마리 퀴리의 딸이다. 원자핵에서 중성자가 튀어나와 양성자와 전자로 분리된 실험 결과를 얻고도 그것이 중성자인지 몰랐다. 일찍이 러더퍼드가 어떤 강연에서 중성자의 존재를 예언했는데 졸리오퀴리는 그 사실을 몰랐고, 제임스 채드윅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느 날 채드윅은 학회지에 실린 졸리오퀴리의 논문을 보고 해석이 잘못됐음을 간파하고 그것이 중성자임을 밝혀 노벨상을 받는다. 졸리오퀴리의 일화는 `죽 쒀서 남 준` 전형적인 케이스다.

아인슈타인은 고등학교에서 공부는 잘했어도 비판 정신이 강한 삐딱한 학생이었다. 한 교사는 그에게 어느 분야로 진출하든 실패할 것이라고 했다. 연방공대를 졸업하고 태도 탓인지 한동안 백수로 지내다 한직인 특허청 심사관 자리를 얻는다. 학계의 어떤 그룹에도 속하지 `못하고` 벗어나 있었다. 실험 한 번 해 본 적 없고 다른 이의 책과 상상력만으로 1901년부터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최신 과학 논문을 접하지 못해 그저 그런 논문을 쓰다가 1905년에 역사에 남는 양자역학, 브라운 운동, 특수 상대성이론 논문 세 편을 단 3개월에 쏟아낸다. 다른 나라에 뒤떨어져 있던 스위스 과학계에서 정규 멤버로 자리를 얻어 소속 그룹의 연구 주제에 매달려야 했다면 그런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존 홀랜드는 컴퓨터과학이라는 전공이 없을 때 내용상 세계 최초의 컴퓨터과학 박사 학위를 MIT에서 취득하고 미시간대 심리학과 교수가 됐다. 진화 메커니즘이 계산에 유용함을 확신한 그는 1950년대 중반부터 진화 알고리즘 연구를 시작했다. 자신을 마케팅할 줄도 모르고 첨단 트렌드에도 관심이 없었다. 1980년대에 기계어로 프로그래밍을 할 정도였다. 1980년대 중반 복잡계 연구의 본산인 산타페연구소에서 초청받아 강연한 뒤 연구소의 방향을 `적응적 복잡계`로 바꿀 정도로 영향을 미친다. 학문적 재미 이외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던 시골 서생이 30년 만에 갑자기 현대과학의 구성주의에 진화가 핵심 메커니즘으로 자리 잡는 결정적인 통찰을 제공한 인물이 된다. 그가 개척한 분야가 유전 알고리즘이다.

주류에 속하지 않는 것은 대개 손해지만 장점도 있다. 아인슈타인처럼 넓은 시야를 갖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왓슨처럼 다른 전공으로 사고하던 프로세스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홀랜드처럼 비주류로 30년을 매진하면 무서운 내공이 쌓일 수도 있다. 변방에 있는 것은 적어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에는 유리한 듯하다.

문병로 교수 

2020년 12월 17일 목요일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