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중앙일보 2020년 12월 18일자 [문병로의 알고리즘 여행]
진화의 세대수를 감안하면 우리 몸은 우주의 근원을 밝히는 연구실보다 아프리카 초원에 더 어울린다. 그런 우리가 138억년 전 우주 탄생까지 추적하고 있다. 놀라운 성취다.
우리 망막에는 600만개 정도의 원추 세포가 있다.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민감하게 반응하는 색의 파장이 다르다. 각각 빨강, 녹색, 파랑 근처를 담당한다. 파장 분포를 보면 인간의 시각은 녹색에 가장 친화적이다. 망막에서 색 파장에 반응하는 이들 원추세포와 명암에 반응하는 간상세포의 입력이 대뇌피질로 들어가서 색을 해석한다. 컬러 TV와 모니터는 우리 눈이 색을 받아들이는 원리를 차용한 것이다. 색을 내는 방법인 RGB 체계는 빛의 삼원색인 빨강, 녹색, 파랑의 강도를 각각 수치로 준 것이다.
인간 학습의 큰 두 줄기는 보고 배우기와 부딪혀보고 배우기다. 시각으로 사물을 구분하는 것은 보고 배우기이고, 고급 학습이나 스포츠 활동은 부딪혀보고 배우기다. 기계학습에서 이를 차용했는데 전자를 지도학습이라 하고, 후자를 강화학습이라 한다.
사람의 대뇌에는 160억개 정도의 뉴런(신경세포)이 있는데 이들은 시냅스로 선택적으로 연결된다. 입력을 받은 뉴런들이 연결의 강도에 비례해서 다른 뉴런들로 신호를 전파하는 과정이 우리의 생각이고 행동이다. 자라면서 뇌에서 시냅스 수가 점점 많아질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출생 직후에는 뉴런 사이의 연결이 아주 희소하다. 유아기에 왕성하게 연결이 증가해 최고조에 이른다. 성인이 되면 유아기의 40% 이하로 오히려 줄어든다. 어린이들은 뉴런의 연결은 많은데 체계가 잡히지 않아 뉴런이 여기저기 마구 ‘발화’한다. 그래서 수용력이 높은 반면 산만하다. 학습이 거듭되면서 경쟁에서 진 시냅스는 도태되고 이긴 시냅스들은 강화된다.
요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딥러닝은 인공신경망이 크고 깊어진 딥넷을 기반으로 한다. 딥넷은 6살 어린이의 뇌처럼 뉴런들을 마구 연결해놓고 시작한다. 이후 다양한 입력을 주고 결과에 따라 연결 강도를 계속 수정한다. 이 과정에서 정보 처리에 별로 기여하지 못하는 연결은 도태되고 일부 연결들이 살아남아 성인의 뇌처럼 체계를 갖춘다.
망막에서는 좁은 범위의 망막 세포들을 다발로 묶어 시신경에 연결한다. 이웃하는 시신경이 담당하는 다발 영역은 겹치고 경계 부분만 다르다. 이렇게 겹쳐 있는 시신경 정보를 처리하면서 전체 이미지를 해석한다. 딥넷 중에 CNN(합성곱신경망)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망막의 다발 처리를 모방한 것이다. 알파고도 CNN 구조의 신경망을 사용하고 있다.
과학의 큰 두 줄기는 환원주의와 구성주의다. 환원주의는 대상을 쪼개 들어가는 것이고, 구성주의는 대상을 합쳐나가는 것이다. 구성주의의 대표 원리는 진화다. 여러 경쟁적 대안들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이긴 것들이 살아남는 방식이다. 원자가 모여 분자가 되고, 세포가 모여 생명체가 만들어지고, 개인이 모여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 다 진화적이다. 진화의 유전적 프로세스를 문제 해결에 차용한 것이 AI의 한 갈래인 유전알고리즘이다. 이 분야의 대부인 존 홀랜드는 자신이 컴퓨팅에 섹스를 도입한 사람이라는 조크를 남겼다.
반면 연금술은 긴 실패의 역사를 갖고 있다. 뉴턴도 그중 한 사람이다. 20세기에 원자 구조가 밝혀지고 금이 양성자 79개를 가진 주기율표 상의 ‘원소’라는 것이 밝혀졌다. 수은 원자에서 양성자 하나만 빼내면 금 원자가 된다. 이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원자핵에서 양성자를 빼내는 것은 핵융합 수준의 힘이 필요하다. 금은 지구의 자연이 만든 적 없고 백 프로 우주에서 날아온 것이다. 우리 몸에는 마그네슘, 철, 아연, 나트륨, 칼슘 등의 무기질 원소가 필요한데 이들도 우리 몸이 생성할 수 없을뿐더러 지구에서도 생성되지 않는다. 우주에서 날아와 존재하던 것을 지구의 식물이나 동물이 섭취하고 우리가 다시 그들을 섭취하는 것이다.
지구에 있는 원소 각각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다른 원소와 분자로 결합되면서 다른 얼굴을 할 뿐이다. 지구는 먼 옛날 초신성 같은 별들이 폭발하고 남은 먼지의 조합이다. 인간도 기본적으로는 우주 먼지의 조합이다. 분자 속에 이미 있는 원소를 ‘추출’할 수 있을 뿐 원소의 생성은 모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인류의 위대한 성취다.